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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공식리뷰단] <우리집에 괴물이 산다>_오판진 평론가
작성자시스템관리자
등록일2023-08-18 19:02:04

한 공연이지만 다른 해석 가능한가?

 

날씨가 더웠지만, 노원어린이극장에는 연극을 보러온 관객들이 많았다. 엄마와 딸들, 아빠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녀 등 다양한 조합이었는데, 입장권에 적힌 자리를 찾기 위해 객석 번호를 확인하였다. 공연장 안은 시원했고, 객석 의자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푹신했다. 다른 관객의 자리와도 충분히 떨어져 있어서 관람할 때 몹시 편안했다. 한 마디로 여기는 최고급 어린이연극 공연장이었다.

주인공은 아인이라는 어린이였고, 아인이네 집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었다. 이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인이네 집에서 일어난 일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서로 다른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한 공연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연출한 점이 매우 특별한 지점이었다. 이런 연출은 쉽지 않은 시도인데, 고민을 많이 해야 하고 아주 섬세한 감각을 동원해야 성공시킬 수 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보여주는 반응에서 이런 연출이 성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공연에 관해 연령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했다. 먼저, 공연을 보는 다수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어린이 관객은 아인이가 집에 있는 괴물과 살면서 갈등하다가 애벌레가 되지만,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나비가 된 행복한 이야기를 보았다고 말한다. 아인이는 사랑하는 가족인 엄마와 아빠랑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걷기도 하고, 재미있게 나무도 오른다. 그리고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는 상상 속에서 이불이나 호랑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즐겁게 지내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눈, , , 손 모습을 한 괴물이 나타나 아인이에게 팔, 다리, 눈 등을 달라고 해서 당황한다. 그러나 괴물의 요구대로 하다 보니, 아인이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애벌레처럼 되고 만다. 이렇게 아인이는 괴물에게 몸을 빼앗겼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이런 아인이의 모습은 널리 알려진 동화 행복한 왕자를 닮았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관객들은 이 공연을 행복한 이야기로 해석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객석을 나서며 환하게 웃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현실적인 관객들은 이 공연을 다르게 이해한다. , 아인이가 가정에서 부모님께 학대받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이 공연 창작진들이 어떤 취지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눈치챈 것이다. 그렇지만, 후자로 해석한 관객들은 어린 동생이나 자녀에게 이런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이런 어색한 모습을 극장 로비나 화장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공연에서 다룬 이슈인 부모의 아동학대라는 말을 직접 입에 올리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법에서 규정하는 아동학대의 정의나 범주, 사례 등에 비춰보면, 상당수 가정이 자유로울 수 없다. 가정에서 어린이가 잘못하여 훈육할 때, 신체, 언어, 또는 정서적으로 어린이를 불편하게 했던 일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마음을 중시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특히 이 공연을 보러 올 정도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이 공연을 보면서 아인이의 상황에 아프게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연에서 보여주는 따끔한 주의나 경고를 자각하기도 한다.

 

절묘한 연출로 어려운 주제 소화하기

 

어린이 관객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다. 그래서 아동극 공연을 준비할 때 창작진들은 이를 고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연 시간이 30분인 아동극 공연을 준비하는 것보다 60분인 공연을 준비할 때, 두 배의 노력을 들이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두 배이기 때문에 두 배의 노력과 비용을 들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배보다 더 많은 힘을 들여야 한다. 등장하는 인형과 무대 위 미장센을 보면서 창작진의 노고가 대단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인형을 볼 때 그러했다. 크기나 형태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인형을 만들었고, 어느 장면에서 어떤 인형을 등장시킬지 절묘하게 선택하였다. 가령, 공연 중반 관객들의 주의가 산만해질 만한 대목에 커다란 인형을 배치하여 몰입을 도왔다. 대체로 사람 몸 크기의 엄마 인형이 등장하였지만, 이 장면에서는 무대가 가득 찰 정도로 커다란 엄마 인형이 나왔다. 긴 천과 커다란 얼굴 인형을 조합한 연출인데, 이 장면에서 모든 관객이 혼을 빼앗긴 듯 집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한 거기서 조금 지난 장면에선 아주 작은 인형과 부분 조명으로 관객의 시선을 계속 사로잡았다.

그리고 공연의 최고 정점인 장면에서 커다란 손 인형 두 개가 아인이를 손으로 감쌌다. 아인이를 공격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무대 소품 가부끼를 두 개 사용한다. 마술사들이 공연할 때 가끔 사용하는 이 소품을 여기서 사용하여 효과를 높였다. 더불어 조명을 붉은색으로 바꿔줌으로써 아인이가 목숨을 잃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나비가 등장하기에 어린 관객은 이 장면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어린 관객들은 아인이가 멋진 나비로 거듭났다고 해석하고, 어른 관객들은 아인이가 아동학대의 결과 숨진다는 것을 눈치챈다.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학대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창작진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