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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공식리뷰단] <코코바우 스타트>_ 관람자 윤소정
작성자시스템관리자
등록일2022-06-29 10:58:53

<2022 춘천인형극제 코코바우 스타트 관람기>

 

공 연 명: I HAT U!
관람일시: 2022.6.11.
토. 12:00
관람장소
: 대극장 앞 광장
관 람 자
: 윤소정, 이규강(11), 이규안(9)

 

휠러스의 <아이 햇 유>는 한낮의 광장에서 공연되었는데, 객석의 일부에만 차양이 있고, 공연자들의 무대 쪽에는 가림막이 없어 공연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시작되었다. 땀은 비 오듯이 흘렀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잦은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여서 공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공연자들의 집중도는 높은 편이었는데, 특히나 해골광대의 자리를 뺏기 위해 방해하고 참견하는 다른 예비광대(?)의 열연이 돋보였다. (이후의 공연은 광장이 아닌 대극장의 로비로 무대가 변경되어서 다행이었다)

 

모자 갖고 할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벗었다 썼다 하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아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해골의 눈이 자꾸 빠져서 재밌었다

-이규강(11)

 

11세 아이와 9세 아이 모두 코코바우 스타트에서 관람한 세 편의 공연에서 가장 재밌었던 작품으로 <아이 햇 유>를 골랐다. 해골의 눈알을 붙여주고, 모자를 던져주고 하는 등의 관객참여가 많기도 하고, 반복되는 해프닝에서 오는 재미가 톡톡했으며, 어른인 나는 커다란 풍선 안에 예비광대가 들어갔던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러니까 연령대와 성별이 다른 세 관람자에게 즐겁고 재미있게, 시종일관 유쾌한 경험을 선사했다는 말이다.

 

<아이 햇 유>는 모자와 해골의 눈알을 시작으로 벌어지는 해골광대와 예비광대의 소동이 주를 이루는데, 해골광대는 이미 공연을 준비한 ㅣLucky spot에 설 수 있는 존재이고, 그 럭키스팟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예비광대의 노력 정도로 극은 읽혔다.

 

해골광대는 눈알을 떨어졌다 붙었다하며 해골광대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인간은 할 수 없는)임을 뽐내고, 더욱이 관객들이 눈알을 주워서 붙여주면서 관객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고, 그러한 재능을 바탕으로 럭키스팟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예비광대에게도 뽐낼 수 있는 재능(해골이 할 수 없는)이 있음을 끊임없이 피력하는 과정. 해골광대의 공연내용을 따라하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도 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그 럭키스팟에 설 수 있는 광대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시간.

 

아이들 역시 그러한 부분을 인지하였는데, 엄마로서는 뺏고 뺏기는과정이라고 인식한 것이 괜찮은 걸까 싶었다. 새로운 광대와 기존의 광대가 단순히 자리를 뺏고 뺏기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에서 예비광대가 승리한다든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기저에 깔리는 것에 대한 우려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럭키스팟을 예비광대에게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해골광대가 예비광대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도 둘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에서 해골광대가 특별히 나쁜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해골광대가 악역이라면 예비광대가 그와의 경쟁에서 럭키스팟을 차지하는 것이 마땅해질 텐데, 단순히 죽어서까지 럭키스팟을 차지하고 있는 해골이기 때문에 럭키스팟을 빼앗겨야하는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자로서는 오히려 해골이 귀여웠기 때문에 예비광대의 동료같이 느껴졌고, 아이들 역시 해골을 캐릭터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함은 없었는데 말이다.

 

또 다른 의문은, 제목에 관한 것이었다. 극의 트루기를 생각하면, I hate you의 의미를 포함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하고 짐작은 하지만, 그렇다면 또 위 단락에서 말한 의문과 같은 맥락의 의문이 발생하게 되고,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 극의 제목이 <아이 햇 유>인지 도무지 모르겠기도 하다. 더욱이 나는 너를 모자해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 아이들에게 전달될까, 문장에 집착하는 어른들만 이해를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공연관람객들의 연령을 생각한다면 다소 어려운 제목은 어려운 제목이었던 듯 싶다.

나는 너를 모자해가 느껴졌는가, ‘모자가 클라이막스 장면까지 부각됐는가 생각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럭키스팟을 차지하기 위한 트루기에 모자 에피소드가 추가된 느낌이었는데 제목은 또 나는 너를 모자해여서 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공 연 명: 할머니의 호호밴드
관람일시
: 2022.6.11.토. 14:00
관람장소
: 코코극장
관 람 자
: 윤소정, 이규강(11), 이규안(9)

 

보따리 크루의 <할머니의 호호밴드>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함께 보낸 한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어 할머니와의 추억을 꺼내놓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느긋하게 강아지와 놀고 귀여워하고, 어린 여자 아이가 하교를 하면 또 여자아이를 얼러준다. 여자아이는 할머니의 품을 온전히 느끼고 자란다. 그랬지만 학창시절의 여자아이는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릴 만큼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도 할머니의 곱은 손. 할머니가 식물에 물을 주고 강아지도 식물도 어여삐 아껴주는 것처럼, 할머니의 품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후에 어른이 되어서 할머니를 추억한다.

할머니의 곱은 손에서 얻은 위로로 오늘을 살아간다.

 

극은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는 않고, 그저 가만히 가만히 기억들을 꺼내놓듯이 펼쳐진다.

마리오네트 퍼펫터가 혼자서 극을 끌어가는데, 퍼펫터가 할머니역을 하고 마리오네트로 여자아이와 강아지 등을 표현하고, 이후 퍼펫터가 성장한 그 여자아이로 분한다. 혼자서 극을 끌어가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극을 진행시켰고, 반전처럼 얼굴을 드러냈을 때에는 공연자에 대한 감탄이 터져나왔다. 마리오네트를 연기하는 것, 할머니로 분해서 작은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표현하는 것 등 모두 훌륭했다.

 

이 극에서 아쉬운 점은 실물 할머니에 비해 마리오네트의 크키가 너무 작아서 생기는 약간의 괴리감이었다. 여자아이의 학창시절이 표현되어야하기 때문에 유년시절과 구별을 두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점은 이해했으나, 크기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은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도입부의 이질감은 관객을 극의 판타지 속으로 견인하는 데에 약간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실물 할머니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느껴지는 크기를 줄이는 방법이나 원근의 활용 등을 고려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 연 명: 피노키오를 위하여
관람일시
: 2022.6.12.일. 15:00
관람장소
: 하늘극장
관 람 자
: 윤소정, 이규강(11), 이규안(9)

 

인형꾼 배시시의 <피노키오를 위하여>는 극을 파악하기에 전체적으로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배우의 연습부족이 너무 자주, 너무 명확하게 노출되어 관객으로서 피노키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뮤지컬 인형극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막스의 넘버를 녹음으로 대체한 것에서는 극을 대하는 공연자들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였고, 또 노래나 표정, 움직임 등에서 퍼펫터으로서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퍼펫터에만 눈이 가는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팔에다 씌우는 헝겊인형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인지, 6프레임으로 구성된 무대의 각각의 한 칸이 너무 작아서인지, 어른관객들은 무대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인형으로의 감정이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피노키오인형은 대사도 없이 시종일관 생기 없이 늘어져있어서, 더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피노키오가 생을 부여받고, 세상으로 나가 모험을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으로서 이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무엇보다 피노키오 인형에 생기부터 불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시종일관 대사 없이 늘어져있는 피노키오에게서 우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러니까 피노키오의 생애를 본 거죠, 우리?

피노키오의 일기 같아서. 피노키오가 바다에 빠졌을 때는 속상했는데, 그걸 헤치고 나와서 제페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 포기하지 말고 하다보면 되는 구나!’하고 느꼈어요.

-이규강 (11)

 

기존에 피노키오에게 씌워진 프레임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정도다. 그것을 피노키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모티브는 좋았다. “당황하거나 위험에 빠졌을 땐 숨을 크게 쉬라고 말하는 극의 언어들에서 주는 느낌들은 분명히 따뜻하고 좋았다. 그러나 팜플렛에 적힌 대장, 우리들은 언제부터 노래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겁니까?”라는 로그라인은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피노키오의 이야기인지, 피노키오를 상징으로 둔 인형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고, 대장이라고 불린 푸하하, 우히히, 크크크(?)’ 세 인형의 극 중 역할 또한 명확하지가 않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로서 분명히 존재하든가, 피노키오 이야기를 관람하고 감정이입하는 존재로 남든지 노선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발전가능성은 보였다. 극 자체가 갖고 있는 좋은 언어들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